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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TRACE | 태화강, 노동자와 함께
김대중에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노동의 도시였다.그러나 공장이 성장하고 수출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산업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산업화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고 노동3권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이 울산에서 던진 메시지였다. 1987년 울산 태화강 유세에서 노동3권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강조하며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경제론에서 강조한 노동자의 권리와 경제주체의 참여라는 철학은 훗날 대통령 취임과 함께 노·사·정이 국가 경제의 해법을 함께 찾는 사회적 대화 체제로 이어졌다. 실제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8년 1월 15일 출범했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성장의 주역인 노동자가 그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려야 하는 도시였다. 대중경제론의 ‘분배의 정의’는 1987년 태화강에서 ‘노동3권’ 으로 이어졌다. 1987년 12월 6일 대통령선거를 열흘 앞둔
9월 2일


DJ TRACE | 울산항, 남북교류 · 북방경제의 중심항으로
김대중에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의 중심지이자, 그 산업적 역량을 남북교류와 북방경제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도시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교류와 협력으로 전환되면서 울산항의 역할도 달라졌다. 1999년 울산항은 유류와 비료, 건설자재 등을 북한으로 보내며 전국 대북 물류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이듬해인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은 이러한 남북 교류·협력의 흐름을 더욱 확대하는 전환점이 됐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과거 산업화의 성과만을 상징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산업적 힘을 바탕으로 남북을 잇고 한반도의 경제영역을 북방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지닌 도시였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과의 세차례 정상회담과 두차례 공식만찬을 갖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사진출
9월 2일


DJ TRACE | 시청, 광역시 승격이 가져 온 '큰울산'
울산 광역시 승격을 전적으로 찬성한다 1987년 노동자의 권리를 말했던 김대중은 1995년에는 도시의 자치권을 지지했다.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수도를 넘어 하나의 독립된 지방정부로 서는 과정이었다. 김대중은 울산을 단순한 산업도시로 본 것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 지방자치, 복지국가가 함께 실현돼야 할 도시로 봤다 1995년 12월 울산의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던 울산 지역 인사 5명이 서울 동교동을 찾았다.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울산은 당시 대한민국 최대 공업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있었다. 1962년 공업특정지구 지정 당시 6만여 명 수준이었던 인구는 1990년대 들어 100만 명에 가까워졌다. 지역에서는 더 이상 경상남도 소속의 한 도시가 아니라 독립된 광역행정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울산이 분리되면 행정·재정 규모가 줄어드는 경상남도가 반대했고 야당인 국민회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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