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TRACE | 태화강, 노동자와 함께
김대중에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노동의 도시였다.그러나 공장이 성장하고 수출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산업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산업화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고 노동3권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이 울산에서 던진 메시지였다. 1987년 울산 태화강 유세에서 노동3권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강조하며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경제론에서 강조한 노동자의 권리와 경제주체의 참여라는 철학은 훗날 대통령 취임과 함께 노·사·정이 국가 경제의 해법을 함께 찾는 사회적 대화 체제로 이어졌다. 실제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8년 1월 15일 출범했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성장의 주역인 노동자가 그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려야 하는 도시였다. 대중경제론의 ‘분배의 정의’는 1987년 태화강에서 ‘노동3권’ 으로 이어졌다.
1987년 12월 6일 대통령선거를 열흘 앞둔 울산 태화강 고수부지.
평화민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비 내리는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노동자들을 만났다
울산은 이미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한 대한민국 최대의 공업도시였다. 수많은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하며 수출과 경제성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김대중은 이런 울산에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안전한 노동환경과 함께 노동3권 보장을 공약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단결권, 사용자와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1987년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등장한 주장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1950년대부터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1987년 서울 노동자 집회에서는 자신이 1956년 노동문제연구소를 만들어 노동문제를 연구했고 오랫동안 노동자의 권익 문제를 다뤄왔다고 직접 설명했다.
당시 그는 노동3권뿐 아니라 8시간 노동, 최저임금, 안전한 작업환경과 노동자의 정치적 의사표현 보장 등을 노동정책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그 밑바탕에는 김대중의 경제철학인 대중경제론이 있었다.
김대중은 박정희식 국가주도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대중경제론을 제시했다. 경제성장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누가 경제성장의 주체이며, 성장의 결과를 누가 가져갈 것인가를 문제 삼았다.
1971년 장충단공원 유세에서 김대중은 대중경제체제를 설명하면서 생산에서는 자유경제를 존중하되 “분배에 있어서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와 사무원이 참여하는 노사공동위원회 구상도 제시했다. 이후 대중경제론은 대중참여경제론을 거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그의 경제철학으로 발전했다.

성장은 필요하다.그러나 성장의 과실이 일부 기업과 자본에 집중돼서는 안 된다. 경제를 만들어낸 노동자와 국민이 성장의 과정과 분배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대중경제론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울산은 김대중의 경제철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도시였다.
1962년 공업특정지구 지정 이후 울산에는 거대한 공장들이 들어섰다. 자동차와 선박이 만들어졌고 석유화학 제품이 생산됐다. 대한민국의 수출과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도시가 됐다.
그러나 그 성장 뒤에는 노동자의 삶이 있었다.
특히 1987년 울산은 노동운동에서도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6월 민주항쟁 이후 전국의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울산이었다. 그런 해의 마지막,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태화강에 서서 노동3권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이야기한 것이다.
김대중에게 노동자의 권리는 경제성장과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1987년 다른 유세에서도 노동자의 조직된 힘과 경제발전에 대한 공헌을 강조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서는 사회 안정과 건전한 경제발전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노동3권, 8시간 노동, 최저임금, 산업안전은 복지 차원의 시혜가 아니라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라는 인식이었다.
1987년 태화강 유세는 김대중이 울산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단순히 공장이 많은 도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부를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도시였고, 산업화의 성과만큼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도시였다. 1971년 대중경제론에서 제기했던 ‘분배의 사회정의’라는 원칙은 1987년 산업수도 울산에서 노동3권과 안전한 노동환경이라는 구체적인 언어로 나타났다.
이 문제의식은 훗날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강조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으로 이어졌다. 시장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경제활동의 주체인 대중이 참여하지 못한다면 온전한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 대중의 참여와 자유·민주주의·사회정의를 전제로 했다는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1987년 비 내리던 태화강에서 김대중은 노동3권을 말했다. 산업수도 울산을 만든 것은 공장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한 노동자들이었다. 경제성장의 과실 역시 노동자와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었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산업화의 성과를 자랑하는 도시인 동시에그 성과를 노동자의 권리와 삶으로 완성해야 할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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