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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TRACE | 함평·영광, 지역감정의 벽을 넘으려 한 선거
1990년 11월 9일, 전남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한 사람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만은 아니었다. 그 선거에는 당시 한국 정치의 깊은 상처였던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었다. 평화민주당은 호남 선거구에 영남 출신 이수인 영남대학교 교수를 후보로 공천했다. 김대중은 이 선택에 분명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을 지지해온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먼저 낯선 선택을 요청한 것이다. 후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만 보지 말고, 어떤 정치를 해왔으며 누구를 대표할 수 있는지를 보자는 제안이었다. 오늘 함평에서 이 선거의 기록을 다시 읽는 일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신뢰를 얻은 정치가 그 신뢰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일이기도 하다. 1990년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지역 대표성을 새롭게 묻는 장면이었다. 1990년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지역정치의 경계를 시험했다 당시 함평과 영광은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이루고 있었다
3일 전


DJ TRACE | 함평역, 국민에게 감사하는 정치를 만나다
정치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묻는다면, 2009년 4월 23일 함평역 앞 장면은 오래 바라볼 만하다. 퇴임한 대통령이 열차에서 내리고, 역 앞에는 그를 기다린 군민들이 서 있었다. 환영 음악이 울렸고, 짧은 인사말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인생을 주민들의 성원과 연결했다. “저는 일생동안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이 말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1997년 마침내 당선되어 헌정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끈 정치인이 퇴임 뒤 지역 주민들 앞에서 다시 꺼낸 말이었다. 함평역의 인사는 그래서 한 개인의 감사만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로 가능했던 정치가 국민에게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2009년 4월 23일 함평역 방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역 앞 풍경. 함평 방문은 역 앞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2009년 4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와 함께
3일 전


DJ TRACE | 함평엑스포공원에서 만나는 자연과 생태의 감동을 담은 하루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함평은 조금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들판과 하천, 공원과 전시관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나비와 곤충, 식물과 물길을 함께 만난다. 함평엑스포공원은 그런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장소다. 이곳은 단순히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공원이 아니다. 함평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나비와 곤충의 도시라는 정체성, 자연을 관광과 교육으로 연결하려는 노력, 아이와 어른이 함께 생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한곳에 모여 있다. 공원을 걷다 보면 자연은 멀리 있는 거대한 말이 아니라, 눈앞의 작은 날갯짓과 흙냄새, 꽃잎 위에 앉은 곤충으로 다가온다. 함평엑스포공원에서 보내는 하루는 그래서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고, 생태를 지키는 일이 왜 우리 삶과 이어져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계절의 꽃과 공원 산책로가 함평의 생태 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함평이 나비의 고장이 된 이유를 걷는 길에서 만난다 함평을 떠올리
3일 전


STUDY | 상생과 균형의 지혜, 공동세원화의 갈등을 넘어 김대중의 통합 정신으로
글 김인규 (김대중정치학교 7기 동문회 회장) 경기도 이천은 농업의 따뜻한 흙빛, 천년 도예의 영롱한 불빛, 그리고 SK하이닉스를 위시한 반도체의 첨단 불빛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도시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 성장 뒤편에는 수도권 중첩 규제와 재정적 한계, 그리고 최근 도의 법인 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 논란과 지역 간 불균형이라는 엄중한 갈등 현안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천시의회가 채택한 공동세원화 반대 결의안이나 대규모 기반 시설 유치를 둘러싼 진통은, 한정된 자원과 결실을 두고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지혜로운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성수석 이천시장이 내놓은 핵심 구상은 이천을 단순한 생산 거점에서 '스스로 숨 쉬는 첨단 자족도시'로 재편하는 담대한 선언이다. 시정 제1호 공약인 ‘15만 평 반도체 연구개발단지 조성’과 특화 기구인 ‘이천 신산업진흥원(ICON)’설립은 인근 도시들의 대규모 투자에 정면
7일 전


STUDY | 시민의 이동권과 삶의 온기, 성수석 시장의 '통학이' 공약에서 김대중의 민생 정치를 읽다
글 최윤석 (김대중정치학교 10기 동문회 사무처장) 이천의 거대한 반도체 단지와 눈부신 경제 성장 뒤에는, 매일 아침 불편한 교통 속에서 발을 구르는 학생들과 읍면 지역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있다. 국민신문고 민원의 68.9%가 교통 문제에 집중된다는 사실은 행정이 바라봐야 할 진짜 나침반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성수석 이천시장이 추진하는 학생 전용 통학 순환버스 ‘통학이 3, 4’의 확대와 스마트 교통체계 구축은 단순히 차를 늘리는 행정이 아니라, 소외되는 아이 한 명 없이 교육받고 이동할 권리를 지키는 따뜻한 민생의 실천이자 대표적인 '수요자 중심 맞춤형 행정'의 사례다. 기존 권역에 이어 새로 신설된 ‘통학이 3’(마장~시내권)은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웠던 마장면 일대(아름수리 아파트, 오천리 등) 학생들을 시내 중·고등학교로 직접 연결하고, ‘통학이 4’(대월·부발~시내권)는 대월면과 부발읍 일대(GM 하이빌, 신하리, 효양중·고 등)
7일 전


이천시민이 그를 선택한 이유
문화로 도시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이천의 젊은 시장, 성수석 연극 무대에서 지역정치로, 성수석 이천시장이 말하는 도시의 미래 반도체의 성장을 시민의 삶으로…재정분권·도농 격차·햇빛소득·축제를 묻다 2026-10-16 성수석 말하고 박성미 쓰다 [ 편집자 주 ] 이 글은 2026년 8월 24일 「지방정치를 가다」 이천 타운홀에서 성수석 이천시장이 한 발언을 중심으로 정리한 편집 인터뷰입니다. 당시 발언의 기록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내용과 논리 전개, 주요 사례와 표현을 최대한 보존했습니다. 쌀과 도자기, 반도체는 이천을 설명하는 익숙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 세 단어만으로 이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반도체 산업이 성장해도 농촌에서는 고령화가 깊어지고,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교육과 의료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축제에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과 그들이 지역에 머물며 소비하는 것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성수
10월 21일


STUDY | AI로 이천을 시뮬레이션하다
글 박성미 (김대중정치학교 10기 동문회 부회장)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이천시민 모두의 생활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도 거주지와 직업, 교통 여건에 따라 주민이 얻는 혜택은 달라진다. 산업단지 주변에서는 일자리와 상권이 확대되는 동시에 교통·환경 부담이 커질 수 있고, 대중교통이 부족한 읍면 지역에서는 산업 성장과 별개로 통학과 병원 방문의 불편이 남는다. 이천의 지방정치는 성장의 규모뿐 아니라 그 혜택과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다뤄야 한다. 성수석 이천시장이 내놓은 공약에서도 이러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시사저널의 취임 100일 보도에 따르면, 이천시는 ‘15만 평 반도체 연구개발단지 조성’과 ‘이천 신산업진흥원(ICON) 설립’으로 생산 중심의 산업 기반을 연구개발·창업으로 확장하려 한다. ‘부발역·이천역·신둔도예촌역 3대 역세권 개발’과 ‘이천시도시공사 설립’은 도시 개발과 지역 내 개발이익 환원을
10월 13일


STUDY | 김대중의 문화정신으로 이천 도자기를 다시 읽는다
글 김연희 (김대중정치학교 10기 동문회 상임부회장) 김대중은 문화의 힘을 중요하게 보았다. 문화는 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시민의 삶을 넓히며, 세계와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천 도자기를 바라볼 때도 그 생각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한 지역의 손기술이 어떻게 한국의 문화가 되고, 세계가 알아보는 품격으로 자라나는가. 이천의 흙과 불은 그 질문에 답한다. 흙은 그냥 흙으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을 만나고, 물과 섞이고, 불을 견디면 그 시대의 그릇이 된다. 이천 도자기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활의 그릇이면서 예술이고, 지역의 산업이면서 한국 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천에서 도자기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 현대 도예가의 손끝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읽는 일이다. 흙을 고르고,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불을 넣는 과정 안에는 오래된 기술과 오늘의 삶이 함
10월 13일


DJ TRACE | 서희역사관, 전쟁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치다
2026-10-07 글 박성미 김대중은 서희를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칭했다. 1999년 서희 서거 1000주기 추모학술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였다. 천 년 전 서희는 거란의 침략 앞에서 적장과 마주 앉아 전쟁의 확대를 막고 고려의 이익을 지켰다. 김대중 역시 안보를 지키면서 대화와 협력으로 남북의 긴장을 낮추려 했다. 이천 서희역사관에서 우리는 두 시대의 정치를 함께 읽는다. 국민이 전쟁의 두려움 없이 살아갈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다. 1999년 11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이천문화원과 고구려연구회가 마련한 서희 서거 1000주기 추모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서희와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이었다. 서희의 가계와 고려의 정치, 외교와 국방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추모식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메시지가 낭독됐다. 이천시가 발간한 『명분과 실리, 서희의 외교론』에는 김대중이 서희를 이렇게 칭송하고, 역
10월 12일


DJ TRACE | 경기도자미술관, 지역문화가 문화강국을 만든다
2026-10-07 글 박성미 김대중은 이천의 도자기에서 문화산업의 미래를 보았다. 도공들이 이어온 기술과 창작의 경험은 지역의 자산이면서 세계에 한국을 알릴 문화적 자산이었다.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에서 그는 문화상품의 경쟁력이 경제발전과 국가의 위상을 결정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오늘의 경기도자미술관에서 우리는 그날의 흔적을 따라, 지역에 축적된 문화가 어떻게 문화강국의 토대가 되는지 읽는다. 2001년 8월 9일, 이천 설봉공원. ‘흙으로 빚는 미래’를 주제로 세계도자기엑스포의 개막식이 열렸다. 다음 날 일반 공개를 앞둔 행사장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국내외 도예 관계자와 외교사절 등이 모였다. 개막식 이후 김대중은 이천 세계도자센터의 세계도자문명전을 관람했다. 2001년 8월 9일, 이천 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에서 연설을 마치고 도자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국가기록원 제공·경기도메모리 소장.사진 원문 “우리
10월 12일


DJ TRACE | 쌀문화축제, 농촌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2026-10-07 글 박성미 김대중에게 농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뒤로 밀려나도 되는 산업이 아니었다. 농촌경제의 발전을 바탕으로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971년 대중경제론을 설명하며 내놓았던 이 구상은, 대통령이 된 뒤 농가소득과 식량자급 기반을 지키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2001년 시행한 논농업직불제는 농업의 가치를 생산량과 판매가격 너머에서 인정한 제도였다. 이천쌀문화축제에서 우리는 쌀의 명성 뒤에 있는 농민의 삶을 보고, 농업을 나라의 기반으로 바라보았던 김대중의 철학을 읽는다. 이천쌀문화축제는 쌀을 사고 밥을 먹으며 수확을 함께 기뻐하는 자리다. DJ TRACE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그 밥 한 그릇을 만들어낸 농민의 노동과 농촌의 가치를 만나기 위해서다. 김대중의 흔적은 이천의 논에 도착했던 정책과 지원 기록에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따라가면 먼저 1971년의 목소리를 만나게 된다. 1971년 4월 18일,
10월 7일


정채균, 행정의 주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담대한 소신
글 박성미 | 정채균 대표는 '사라지는 것'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안다. 파주로 오기 전 서울에서 오랫동안 하던 일이 '낡고 쓸모없는 집은 리뉴얼해서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주는' 일 이었다. 파주의 산과 파주의 들판이 그에게는 새로운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치유센터도 하고 싶고, 로컬푸드 사업도 하고 싶고, 소상공인을 위한 일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끝이 없다.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는 이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살고 싶어서다. 거기에 큰 꿈 하나가 청소년 장학재단 설립이다. 평화와 인권을 배우며 부족함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정채균장학재단'의 탄생을 기다려본다. 2026. 8. 24 울산 종하이노베이션에서 열린 김상욱시장과의 타운홀미팅에 참석한 정채균 부회장. 사진 박성미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시민이 삶의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가 울산 현장에서 어떻
9월 4일


방인혜 파주시의원, 시민을 위한 도구로 쓰여지기 위하여
글 박성미 | 방인혜 파주시의원은 김대중정치학교 10기 상임부회장이면서 '김대중재단 파주시지회 부회장'이다. 파주시청소년재단 시설운영위원, 더불어민주당 파주갑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정치인이 되기 전, 그녀는 시민활동가였다. 운정1동 주민자치회 사무장, 책읽기운동본부 대표, 시민기자를 경험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무섭다고 하기도 한다. 본인이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을 꼭 짚어서 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그녀는 잘 울고 잘 웃는 아주 '착한' 사람이다. 파주 시민을 다 안아도 부족함 없는 '큰 품'을 가지고 있다. 시민을 위해 도구로 쓰여짐이 마냥 행복할 사람, 그녀가 김상욱 의원을 만난 날, 눈물 흘린 이유다. 2026. 8. 24 울산 종하이노베이션에서 열린 김상욱시장과의 타운홀미팅에 참석한 방인혜 상임부회장. 사진 박성미 "울산 김상욱 시장과의 만남은 ‘시민이 주인인 지방정치란 무엇인가’를
9월 4일


김종수,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글 박성미 | '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이 글은 SNS에 올라와 있는 그의 인사말이다. 짧게 같이 있어도 그가 사람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그는 툭툭 무심결에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 몸에 배인것이리라. 전남 함평에서 섬여행 전문 '여행클럽여행사'를 운영하며 김대중정치학교 출석을 위해 매주 서울에 올라왔다. 함평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서울의 공기관에서 오래 동안 근무했다. '김대중 정신 계승해서 대한민국 참 민주주의 발전시켜 부국강국 이룩합시다'. 김대중 정치학교에 입학하면서 동기들에게 그가 남긴 글이다. 현재 김대중정치학교 부회장이며 '지방정치를 가다'에서 여행기획을 맡고 있다. 2026. 8. 24 울산 종하이노베이션에 참석해 김상욱시장과 타운홀미팅을 하고 있는 김종수 부회장. 사진 박성미 " 기획해주신 박성미 부회장님과 동지님들
9월 4일


박성미, 대한민국 구석구석 민주주의 뿌리를 찾아
글 박성미 | 여행방송사를 인수해 오랫동안 운영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꿈이 있었다. 대필작가를 하면서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모르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면을 금새 볼 줄 안다는 치명적 능력을 가진 것이고, 그나마 글쓰기를 좋아한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기왕이면 내가 그토록 젊은 시절 목메던 민주주의를, 내 발로 찾아다니며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함께 한 사람들과 막걸리도 한잔 마시며, 내나라 내민족 우리안의 민주주의를 기록하고 싶다. " 사람을 눈물 짓게 하는 사람은 마음도 가져간다. 사십대의 젊은 시장, 그를 만나고 나니 뉴욕시장이 안부럽다. 이렇게 따뜻하고, 이토록 여리고, 이만큼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더하여 바다까지 좋아한다고 하니 , 나는 기꺼이 팬이 되고싶다
9월 3일


최윤석 , 혹한을 견디고 피어나는 인동초처럼
2026. 8. 24 울산 종하이노베이션에 참석해 김상욱시장과 타운홀미팅을 하고 있는 최윤석 사무처장. 사진 박성미 " 제가 서 있는 삶과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의 몰상식에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진심과 섬김의 자세로 제 소명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지방정치의 현장에서 희망의 인동초 꽃을 피워내고 계신 김상욱 울산시장님의 당당하고 소신 있는 걸음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글 최윤석 차가운 침묵과 카르텔의 그늘 지난 3년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생회 현장에서, 그리고 여러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제가 눈으로 확인한 풍경은 다소 차갑고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기득권의 굳건한 울타리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고한 성채를 지키기 위해 비범한 부지런함으로 단결했고, 외부의 건강한 바람이 울타리를 넘어오는 것을 한 치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정당한 문제를 제기
9월 3일


DJ TRACE | 태화강, 노동자와 함께
김대중에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노동의 도시였다.그러나 공장이 성장하고 수출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산업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산업화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고 노동3권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이 울산에서 던진 메시지였다. 1987년 울산 태화강 유세에서 노동3권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강조하며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경제론에서 강조한 노동자의 권리와 경제주체의 참여라는 철학은 훗날 대통령 취임과 함께 노·사·정이 국가 경제의 해법을 함께 찾는 사회적 대화 체제로 이어졌다. 실제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8년 1월 15일 출범했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성장의 주역인 노동자가 그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려야 하는 도시였다. 대중경제론의 ‘분배의 정의’는 1987년 태화강에서 ‘노동3권’ 으로 이어졌다. 1987년 12월 6일 대통령선거를 열흘 앞둔
9월 2일


DJ TRACE | 울산항, 남북교류 · 북방경제의 중심항으로
김대중에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의 중심지이자, 그 산업적 역량을 남북교류와 북방경제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도시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교류와 협력으로 전환되면서 울산항의 역할도 달라졌다. 1999년 울산항은 유류와 비료, 건설자재 등을 북한으로 보내며 전국 대북 물류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이듬해인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은 이러한 남북 교류·협력의 흐름을 더욱 확대하는 전환점이 됐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과거 산업화의 성과만을 상징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산업적 힘을 바탕으로 남북을 잇고 한반도의 경제영역을 북방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지닌 도시였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과의 세차례 정상회담과 두차례 공식만찬을 갖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사진출
9월 2일


DJ TRACE | 시청, 광역시 승격이 가져 온 '큰울산'
울산 광역시 승격을 전적으로 찬성한다 1987년 노동자의 권리를 말했던 김대중은 1995년에는 도시의 자치권을 지지했다.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수도를 넘어 하나의 독립된 지방정부로 서는 과정이었다. 김대중은 울산을 단순한 산업도시로 본 것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 지방자치, 복지국가가 함께 실현돼야 할 도시로 봤다 1995년 12월 울산의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던 울산 지역 인사 5명이 서울 동교동을 찾았다.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울산은 당시 대한민국 최대 공업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있었다. 1962년 공업특정지구 지정 당시 6만여 명 수준이었던 인구는 1990년대 들어 100만 명에 가까워졌다. 지역에서는 더 이상 경상남도 소속의 한 도시가 아니라 독립된 광역행정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울산이 분리되면 행정·재정 규모가 줄어드는 경상남도가 반대했고 야당인 국민회
9월 2일


김우성이 말하는 울산…산업도시의 다음 질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2026년 8월 24일 김우성 말하고 박성미 쓰다 2026년 8월 24일, 울산. 김대중정치학교 10기 동문들이 ‘지방정치를 가다’ 첫 지역으로 울산을 찾았다. 김우성 조국혁신당 울산 남구지역위원장과 마주 앉아 울산의 정치와 산업, 인구, 노동, AI 전환,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편집자 주 이 글은 2026년 8월 24일 「지방정치를 가다」 사전행사로 진행된 울산 시민과의 밋업행사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한새롬 이사장과 김우성 조국혁신당 청년위원장의 강연을 중심으로 정리한 편집 인터뷰다. 당시 발언의 기록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내용과 논리 전개, 주요 사례와 표현을 최대한 보존했다. 반복되는 구어와 명백한 자동녹취 오류는 읽기 쉽게 정리했다. 김우성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대학원 생명과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한 생태학자이자 환경활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환경교육센터 팀장, 울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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