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TRACE | 울산항, 남북교류 · 북방경제의 중심항으로
김대중에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의 중심지이자, 그 산업적 역량을 남북교류와 북방경제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도시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교류와 협력으로 전환되면서 울산항의 역할도 달라졌다. 1999년 울산항은 유류와 비료, 건설자재 등을 북한으로 보내며 전국 대북 물류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이듬해인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은 이러한 남북 교류·협력의 흐름을 더욱 확대하는 전환점이 됐다. 김대중에게 울산은 과거 산업화의 성과만을 상징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산업적 힘을 바탕으로 남북을 잇고 한반도의 경제영역을 북방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지닌 도시였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울산항은 남북교류의 주요 물류거점이었다.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울산에서 생산된 유류와 비료, 각종 산업·건설자재가 울산항을 통해 북한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울산이 한반도 평화와 교류를 뒷받침하는 항구로 역할을 넓힌 것이다.
남북교류가 확대되던 1999년 울산항의 역할은 두드러졌다. 당시 울산항에서는 유류 약 19만8000t, 건설자재 9만9000t, 비료 6만5000t 등이 북으로 보내졌다. 목적지는 청진과 해주, 남포, 흥남, 원산 등 북쪽의 주요 항구였다. 울산항을 통해 이동한 물량은 당시 전국 대북 물류 수송량 약 69만7000t의 52%에 달했다.
전국에서 북한으로 향한 물자의 절반 이상이 울산항을 거쳐 갔던 셈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대결과 단절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을 통해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실제 경제와 물류의 현장에서는 수많은 물자가 남과 북을 오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울산항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울산의 산업구조가 남북교류와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울산에는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비롯해 비료와 비철금속, 조선·플랜트 산업이 집적돼 있었다.
북에 필요한 산업재와 에너지, 건설자재 상당수를 울산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울산항을 통해 공급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울산은 남북교류가 확대될수록 더욱 역할이 커지는 도시였다.
실제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가 북한에 비료를 지원하던 시기에는 북한 선박이 울산항에 직접 들어와 지역에서 생산된 비료를 싣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2008년 4월에는 북한 남포항을 출발한 화물선 창덕호가 무연탄 1만2000t을 싣고 두 차례 울산항에 입항하기도 했다. 울산항은 일방적으로 물자를 보내는 지원항만을 넘어 남북 간 물자가 실제로 오가는 교역항의 경험까지 가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울산항에서는 유류와 비료, 건설자재를 실은 배가 북으로 갔고 북의 선박이 울산항으로 들어왔다. 남북의 물자가 울산항으로 중심으로 오고갔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의 수출전진기지였던 울산항은 통일준비 시대 남북의 교류전진기지였다.
이는 김대중 정부가 구상했던 남북경제협력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었다.
남북을 연결하고 북한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경제권을 구축한다면 울산은 단순한 남동해안의 산업도시가 아니라 북방으로 진출하는 산업·물류거점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북의 항만과 철도, 도로가 연결되고 북과 러시아의 에너지와 자원이 남의 산업도시와 결합한다면 울산의 조선·플랜트·석유화학·비철금속 산업 역시 새로운 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울산에서 북의 동해안 항구인 원산과 흥남, 청진·나진을 연결하고, 다시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은 그런 가능성을 상징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다시 높아졌을 때 울산에서 가장 먼저 재조명된 것도 김대중 정부 시절의 경험이었다. 당시 울산에서는 울산시와 울산발전연구원, 울산테크노파크, 울산항만공사, 울산상공회의소 등이 참여하는 남북경협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다. 남북교류협력기금과 교류협력위원회 구성도 논의됐다.

울산항을 다시 대북지원 물류항으로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나진·선봉 등 북한 동해안 항만과 연결해 북방물류의 중심항으로 육성하자는 구상도 제기됐다. 이는 울산 경제의 활로를 다시 북쪽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이라는 국가전략 속에서 울산이라는 산업도시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알수 있는 대목이다.
참조자료
https://blog.naver.com/simml/221276102799?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https://cafe.naver.com/nurim020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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