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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 김대중의 문화정신으로 이천 도자기를 다시 읽는다

10월 13일
6분 분량

글 김연희 (김대중정치학교 10기 동문회 상임부회장)

김대중은 문화의 힘을 중요하게 보았다. 문화는 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시민의 삶을 넓히며, 세계와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천 도자기를 바라볼 때도 그 생각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한 지역의 손기술이 어떻게 한국의 문화가 되고, 세계가 알아보는 품격으로 자라나는가. 이천의 흙과 불은 그 질문에 답한다.



흙은 그냥 흙으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을 만나고, 물과 섞이고, 불을 견디면 그 시대의 그릇이 된다. 이천 도자기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활의 그릇이면서 예술이고, 지역의 산업이면서 한국 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천에서 도자기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 현대 도예가의 손끝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읽는 일이다. 흙을 고르고,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불을 넣는 과정 안에는 오래된 기술과 오늘의 삶이 함께 있다.


Wide-angle view of a traditional Korean pottery kiln in Icheon.
흙과 불이 만나는 가마는 이천 도자기의 시간을 품고 있다.

이천의 흙은 도자기가 되기에 좋은 조건을 품고 있었다


이천이 도자기의 고장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도자기는 손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흙, 물, 땔감, 가마를 둘 수 있는 환경이 함께 필요하다. 이천은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만들기에 알맞은 자연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알려졌다.


도자기의 출발은 흙이다. 흙은 너무 거칠어도, 너무 무르기만 해도 좋은 그릇이 되기 어렵다. 빚었을 때 형태를 잡아야 하고, 말랐을 때 갈라지지 않아야 하며, 높은 온도의 불을 견뎌야 한다. 이천 일대의 점토는 이러한 도자기 제작에 적합한 재료로 활용되어 왔다.


여기에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조건도 작용했다. 조선시대 왕실 도자의 중심이었던 경기도 광주 분원과 이천은 지리적으로 멀지 않았다. 왕실 백자의 전통과 경기 지역 도자 문화의 흐름 속에서 이천은 자연스럽게 도예의 기반을 넓혀 갔다.


한국 도자사의 큰 줄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로 이어진다. 고려청자는 비색의 아름다움으로, 조선백자는 절제된 형태와 담백한 색으로 평가받는다. 이천 도자기는 이 긴 전통을 오늘의 생활과 예술 속으로 옮겨 온다. 전통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대의 식탁과 공간에 어울리는 그릇으로 다시 태어난다.


도자기는 완성품만 보면 조용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선택이 숨어 있다.


  • 어떤 흙을 쓸 것인가

  • 얼마나 곱게 걸러낼 것인가

  • 어떤 형태로 빚을 것인가

  • 어떤 유약을 입힐 것인가

  • 어느 온도에서 얼마나 오래 구울 것인가


이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그릇이 된다. 그래서 도자기는 기술이면서 판단이고, 노동이면서 미감이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기억이 이천에서 이어진다


한국 도자기의 역사를 말할 때 고려청자를 빼놓을 수 없다. 고려청자는 은은한 푸른빛과 상감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새긴 뒤, 그 안에 다른 색의 흙을 메우고 구워내는 방식은 높은 기술을 요구했다. 고려 사람들은 도자기 안에 자연과 불교적 세계관, 귀족 문화의 세련됨을 담았다.


조선에 이르면 도자기의 중심은 백자로 옮겨간다. 조선백자는 화려함보다 절제와 균형을 중시했다. 흰 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유교적 질서와 검소함, 단정한 생활 감각을 담은 미감이었다. 달항아리처럼 넉넉한 형태의 백자는 지금도 한국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사랑받는다.


이천 도자기는 이 두 전통을 모두 품는다. 청자의 색을 연구하는 작가도 있고, 백자의 선을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가도 있다. 분청사기의 자유로운 붓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도 이어진다. 전통은 박물관 유리장 안에만 있지 않다. 작업장의 물레 위에서, 가마의 불 앞에서 계속 바뀌고 살아난다.


이천의 도예가들은 옛 도자기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통의 원리를 배우고, 오늘의 쓰임에 맞게 다시 만든다. 물컵, 밥그릇, 접시, 화병, 다기, 조형 작품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어떤 그릇은 매일 밥상에 오른다. 어떤 작품은 전시장에 놓인다. 쓰임이 다르지만 출발점은 같다. 흙을 다루고 불을 견디게 하는 일이다.


도자기는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 흙과 사람과 불이 서로를 견디며 만들어 낸 시간이다.

이천에서 도자기를 보면 흙의 색이 다르고, 유약의 흐름이 다르며, 굽의 느낌도 다르다. 손으로 만든 그릇은 완전히 똑같지 않다. 그 작은 차이가 오히려 매력이다. 기계로 찍어낸 물건이 줄 수 없는 온기가 있다.


Close-up view of a potter shaping white porcelain on a spinning wheel.
물레 위의 흙은 손끝의 압력에 따라 그릇의 형태를 얻는다.

이천 도자기 마을은 전통을 오늘의 산업으로 키웠다


이천 도자기가 널리 알려진 데에는 도예가들의 집적과 지역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이천에는 도자기 작업장과 전시장, 판매 공간이 모여 있는 도예촌과 도자기 관련 시설이 형성되어 있다. 방문객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할 뿐 아니라, 흙을 만지고 물레를 체험하며 제작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도자기 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 관광, 교육, 생활용품 소비가 함께 움직인다. 그릇 하나를 사는 일이 한 작가의 작업을 지지하는 일이 되고, 지역의 공방을 유지하는 힘이 된다. 축제와 전시는 도예가와 시민을 만나게 한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운다. 어른들은 일상에서 쓰는 그릇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이천도자기축제는 이러한 만남의 장으로 알려져 있다. 축제에서는 도자기 전시와 판매, 체험 프로그램, 작가와의 만남이 함께 열린다. 도자기는 평소에는 조용한 물건처럼 보이지만, 축제의 현장에서는 지역 공동체의 활기가 된다. 가마에서 나온 그릇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식탁과 찻자리로 옮겨 간다.


이천에는 도자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도 있다. 이천 세라피아와 관련 전시 시설은 전통 도자와 현대 도예를 함께 소개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한국도자재단도 경기 지역 도자 문화의 보존과 확산에 관여해 왔다. 이러한 기반은 이천 도자기가 지역 특산품에 머물지 않고, 문화 자산으로 인정받는 데 힘이 되었다.


2010년 이천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공예와 민속예술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실은 이천 도자기가 지역 안에서만 의미 있는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세계 여러 도시가 각자의 창의를 바탕으로 교류하는 틀 안에서 이천은 도자기의 도시로 소개되었다.


물론 이름이 붙었다고 전통이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계속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다. 작가, 장인, 교육자, 축제 운영자, 지역 주민, 방문객이 함께 이 문화를 유지한다. 전통은 누군가 이어갈 때만 살아 있다.


김대중의 문화정신으로 이천 도자기를 다시 읽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동시에 그는 문화의 힘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문화정책을 말할 때 자주 거론되는 원칙이 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국가는 문화예술의 토대를 마련하고, 창작의 자유는 예술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관점에서 이천 도자기를 보면 한 지역의 문화가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도자기는 행정이 명령해서 만들어지는 예술이 아니다. 흙을 아는 사람, 불을 다루는 사람, 형태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국가는 그들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역은 그 가치를 알아보며, 시민은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감상한다.


문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구체적인 기반에서 자란다. 작업장을 지킬 수 있는 조건, 후배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 공정하게 거래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도예가가 흙을 버리지 않고 계속 붙들 수 있어야 도자기의 도시도 있다.


김대중이 강조한 문화의 힘은 세계와 만나는 힘이기도 했다. 한국 문화가 세계인에게 다가가려면, 먼저 우리 안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천 도자기는 그 좋은 예다. 한국의 도자기는 오래된 왕조의 유물이면서, 지금도 쓰이는 생활의 그릇이다. 전통과 현대가 한 자리에 서 있다.


이천 도자기의 품격은 화려한 장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워낼 줄 아는 선, 손에 잡히는 무게, 음식을 담았을 때의 안정감,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빛에서 나온다. 그 품격은 한국 문화가 가진 절제와 깊이를 보여준다.


Eye-level view of white porcelain bowls arranged on a wooden shelf.
이천의 백자는 생활의 그릇이면서 한국적 미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흙과 불의 과정은 기다림의 문화다


도자기는 빠르게 완성되지 않는다. 흙을 준비하고, 형태를 만들고, 말리고, 초벌하고, 유약을 입히고, 다시 굽는다. 어느 단계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말리는 시간이 부족하면 갈라질 수 있고, 불의 온도가 맞지 않으면 색과 강도가 달라진다. 가마 문을 열기 전까지 작가는 결과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도자기에는 기다림이 들어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재료를 설득하는 시간이다. 흙은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무너진다. 너무 욕심내면 형태가 흐트러진다. 불은 사람의 계획을 따르면서도 예측 밖의 흔적을 남긴다. 좋은 도자기는 이 불확실성을 견딘 끝에 나온다.


이 과정은 오늘의 삶에도 말을 건넨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버리는 생활 속에서 도자기는 다른 속도를 보여준다. 오래 쓰기 위해 만들고, 손에 익을수록 정이 붙는 물건이다. 흠이 생겨도 버리기보다 다시 쓰는 마음을 불러온다. 좋은 그릇은 식탁의 태도를 바꾼다. 음식을 조금 더 정성껏 담게 하고, 먹는 시간을 조금 더 바라보게 한다.


이천 도자기가 가진 힘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전통 공예가 과거의 장식품으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생활 방식을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오래 쓰고 있는가. 어떤 물건을 곁에 두고 싶은가. 일상의 도구에도 품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도자기는 조용히 알려준다.


도자기는 손의 문화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손으로 굽을 깎고, 손으로 유약의 흐름을 살핀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손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귀해진다. 이천의 공방에서 만나는 그릇들은 그 손의 시간을 증명한다.


이천에서 도자기를 본다는 것은 한국 문화의 미래를 보는 일이다


이천 도자기의 역사는 과거로만 향하지 않는다.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형태와 색을 실험한다. 전통 가마의 방식과 현대 장비를 함께 쓰기도 한다. 생활자기는 더 가볍고 편리한 방향으로 변하고, 조형 도자는 더 자유로운 표현을 시도한다. 전통은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계속 새로워지는 기준이 된다.


도자기의 세계화도 단순히 해외에 판매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천의 도자기가 왜 이천다운지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이다. 재료와 기술, 역사와 생활문화가 함께 있을 때 세계와의 대화도 깊어진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라는 이름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 이름에 걸맞은 활동과 교육, 창작이 이어져야 한다.


지역 문화가 힘을 얻으려면 시민의 관심도 필요하다. 도자기 축제를 찾고, 공방을 방문하고, 작가의 그릇을 생활에서 쓰는 일은 작은 참여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쌓이면 한 지역의 문화 생태계가 유지된다. 도자기는 혼자 살아남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이어진다.


김대중의 문화정신을 이천 도자기 앞에서 되새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는 국가의 장식이 아니다.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을 살리며, 세계와 소통하게 하는 힘이다. 전쟁과 가난, 억압의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와 문화의 가치를 말했던 그의 생각은 이천의 가마 앞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흙은 낮은 곳에 있다. 불은 위험하고 뜨겁다. 하지만 사람은 그 흙과 불로 품격 있는 그릇을 만든다. 이천 도자기의 천 년은 그렇게 이어졌다. 자연의 재료를 문화로 바꾸고, 생활의 도구를 예술로 높여 온 시간이다.


Wide-angle view of ceramic vessels displayed at an outdoor pottery festival in Icheon.
축제의 현장에서 도자기는 작가와 시민을 이어주는 문화가 된다.

이천에서 도자기를 바라보면 한국 문화의 오래된 힘이 보인다. 화려하게 외치지 않아도 오래 남는 아름다움, 손으로 만든 물건이 가진 정직함, 지역의 흙을 세계의 언어로 바꾸는 창의가 보인다. 이천 도자기는 흙과 불로 빚은 그릇이면서, 한국인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겨 왔는지 보여주는 문화의 기록이다.


참조자료


  •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자료 2010년 이천 공예와 민속예술 분야 가입 기록

  • 한국도자재단 이천 세라피아 및 경기 도자 문화 관련 자료

  • 이천시 이천도자기축제 및 도자 문화 소개 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도자사 관련 해설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 관련 항목

  • 문화체육관광부 김대중 정부 문화정책 및 문화예술 지원 원칙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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