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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 쌀, 도자기.. 그리고  반도체가 공존하는 도시

2010년 2월 2일
2분 분량

글 김새롬 (김대중정치학교 10기 동문회 여성국장)

경기도 이천은 왕건이 주민의 도움으로 복하천을 건넜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유래한, 쌀과 농경문화로 알려진 도시다. 1950년대 말 숙련 도공들이 수광리 가마로 모여들며 도예산업이 성장했고, 쌀밥거리와 도예촌은 지역의 음식·관광문화로 발전했다. 1983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현대전자의 생산 기반이 오늘의 SK하이닉스로 이어지면서, 이천은 농업도시에서 세계 반도체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경기도 이천시는 복하천 주변에 농경문화가 이어져 온 도시다. ‘이천(利川)’이라는 이름도 강을 건넌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치러 가던 중 주민 서목의 도움으로 복하천을 건넜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뜻의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지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고려의 외교가 서희도 이천 출신이다.


이천은 오랫동안 쌀로 이름을 알렸다. 복하천과 지류 주변의 농경지에서 생산된 쌀은 지역의 대표 특산물이 됐다. 오늘도 농경지는 시 전체 면적의 약 36%를 차지한다. 도시가 산업화된 뒤에도 농업은 이천의 주요 생산 기반으로 남아 있다.


이천쌀의 명성이 전국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품질관리와 유통체계의 변화가 있었다. 1995년 상표 등록한 ‘임금님표 이천쌀’은 다른 지역 쌀과 구별되는 공동브랜드로 발전했다. 이후 지역 농협과 농민, 시가 재배·가공·유통·홍보를 연결하며 브랜드를 관리했다. 쌀을 생산하는 지역의 이름이 소비자가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농업도시 이천에 도자기가 새로운 산업 기반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50년대 말부터였다. 서울의 한국미술품연구소가 문을 닫자 숙련 도공들이 일자리를 찾아 신둔면 수광리의 칠기가마로 내려왔다. 생활용기를 생산하던 지역의 가마와 기술에 전통도자기를 재현하려는 장인들의 경험이 더해졌다. 이후 요장과 공방이 늘어나면서 이천은 현대 도예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도예촌 주변에는 이천쌀로 밥을 짓는 식당들도 들어섰다. 쌀과 도자기는 생산품을 넘어 사람들이 이천을 방문하는 이유가 됐다. 쌀밥집과 도예촌은 농업과 공예가 음식·관광·유통으로 확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의 경제 규모를 바꾼 또 하나의 전환은 반도체였다. 1983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현대전자는 이천에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농지 전용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착공이 지연되기도 했다. 농업에 이용되던 땅 일부가 첨단 제조업의 생산 기반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현대전자의 이천 생산 기반은 오늘의 SK하이닉스로 이어졌다. 반도체 생산시설과 관련 기업, 노동자들이 모이면서 이천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주요 거점이 됐다. 지역경제도 농산물과 생활용품을 생산하던 구조에서 세계 시장의 수요와 기업 실적에 영향을 받는 구조로 확대됐다. 이천의 면적은 461.6㎢로 서울의 약 4분의 3이다. 인구는 외국인을 포함해 약 24만 명이다. 이 도시 안에서 농민은 쌀을 생산하고, 도공은 그릇을 만들며, 반도체 노동자는 세계 시장에 공급할 제품을 생산한다. 복하천의 농경지와 수광리의 가마, 현대전자의 공장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이천의 경제를 바꾸었다. 오늘의 이천은 농업의 기반 위에 공예와 첨단 제조업이 차례로 자리 잡으며 성장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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