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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TRACE | 쌀문화축제, 농촌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10월 7일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13일

2026-10-07 글 박성미

김대중에게 농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뒤로 밀려나도 되는 산업이 아니었다. 농촌경제의 발전을 바탕으로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971년 대중경제론을 설명하며 내놓았던 이 구상은, 대통령이 된 뒤 농가소득과 식량자급 기반을 지키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2001년 시행한 논농업직불제는 농업의 가치를 생산량과 판매가격 너머에서 인정한 제도였다. 이천쌀문화축제에서 우리는 쌀의 명성 뒤에 있는 농민의 삶을 보고, 농업을 나라의 기반으로 바라보았던 김대중의 철학을 읽는다.


이천쌀문화축제는 쌀을 사고 밥을 먹으며 수확을 함께 기뻐하는 자리다. DJ TRACE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그 밥 한 그릇을 만들어낸 농민의 노동과 농촌의 가치를 만나기 위해서다.

김대중의 흔적은 이천의 논에 도착했던 정책과 지원 기록에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따라가면 먼저 1971년의 목소리를 만나게 된다. 1971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대중경제체제를 설명하면서 생산에서는 자유경제를, 분배에서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농촌경제와 상공업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촌 경제의 발전 기초 위에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켜…”

당시 김대중은 경제성장과 공업화를 부정하지 않았다. 급격한 이촌향도와 불균형한 발전이 초래하는 문제를 바라보며 농촌과 도시, 농업과 상공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주장했다. 농촌은 산업화를 위해 사람과 자원을 내어주는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됐다. 농민도 경제발전의 주체로 참여하고 그 성과를 누려야 했다.


공장이 성장하고 수출이 늘어나는 동안, 그 사회를 먹여 살리는 농민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가.


김대중의 농업관은 이 질문에서 읽을 수 있다. 산업의 성장을 국민의 삶과 연결하려면 농촌의 경제도 함께 살아나야 한다. 농업의 기반이 약해지고 농민의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발전을 온전한 국가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1971년의 연설은 그 질문을 남겼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 대통령 김대중은 농가소득과 식량자급 기반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예고했다.


2000년 7월 1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대강당.

통합농협 출범 기념식에 참석한 김대중은 농업인의 중산층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말했다.

“논농업 직접지불제를 내년부터 실시해 농가소득을 안정시키고 식량자급기반을 향상시켜 나가겠다.”

이 발언에는 농민의 생활과 국가의 식량 기반이 함께 담겨 있다.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기반도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음 해인 2001년 논농업직불제가 시행됐다.


이 제도가 주목한 것은 논이 가진 공익적 기능이었다. 농민에게 논의 형상과 기능을 유지하고 비료와 농약을 적정하게 사용하는 등의 의무를 부과한 뒤, 이행 여부를 확인해 보조금을 지급했다. 쌀을 생산하는 활동과 함께 국토환경을 보전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역할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김대중 정부의 농정을 다시 평가할 수 있다. 농민이 생산한 쌀은 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러나 논을 유지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일의 가치는 쌀값에 충분히 담기기 어렵다. 사회 전체가 누리는 가치라면 그 비용도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 논농업직불제는 이러한 농업의 역할을 국가의 제도 안으로 가져왔다.


김대중대통령에게 농업을 지키는 것은 농민 한 사람의 생업을 지키는 일이면서, 국민 전체가 의존하는 삶의 기반을 지키는 일이었다.



2011년 이천쌀문화축제의 대형 가마솥 밥짓기. 당시 행사장은 설봉공원이었다. 사진 출처: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721641


이천쌀문화축제는 그 농업의 가치를 지역이 시민에게 전하는 자리다. 축제는 1999년 10월 ‘이천농업인축제’로 시작했다. 2001년에는 ‘이천햅쌀축제’, 2004년에는 ‘이천쌀문화축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농민들이 수확을 자축하던 행사는 시민들이 농경문화를 체험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자리로 발전했다.


2011년 축제 기록에는 대형 가마솥으로 지은 밥을 함께 먹고, 농경문화를 체험하며, 지역별 햅쌀장터에서 쌀을 사는 모습이 남아 있다. 농민이 생산한 쌀을 소비자가 직접 만나고, 그 쌀이 나온 지역의 생활과 문화를 경험하는 축제였다.


축제는 논농업직불제보다 먼저 시작됐다. 두 사업을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로 연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나타난 두 움직임을 함께 읽을 수는 있다. 국가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의 소득 기반을 지원했다. 지역은 농민의 수확을 시민과 나누며 농업의 가치를 알렸다. 제도와 축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농촌과 도시를 연결했다.


이천쌀의 명성도 이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좋은 쌀이 널리 알려지고 많이 팔리는 일은 지역에 중요하다. 그 명성이 쌀을 생산하는 농민의 안정된 생활로 이어지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


김대중의 농업철학을 오늘의 이천에서 읽는다면, 농업을 국가발전의 기반으로 인정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농민이 그 기반을 계속 지킬 수 있도록 소득과 생활의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쌀문화축제에서 우리가 만나는 김대중의 정신은, 농촌이 안정되어야 국민의 삶과 경제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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