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TRACE | 경기도자미술관, 지역문화가 문화강국을 만든다
최종 수정일: 10월 13일
2026-10-07 글 박성미
김대중은 이천의 도자기에서 문화산업의 미래를 보았다. 도공들이 이어온 기술과 창작의 경험은 지역의 자산이면서 세계에 한국을 알릴 문화적 자산이었다.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에서 그는 문화상품의 경쟁력이 경제발전과 국가의 위상을 결정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오늘의 경기도자미술관에서 우리는 그날의 흔적을 따라, 지역에 축적된 문화가 어떻게 문화강국의 토대가 되는지 읽는다.
2001년 8월 9일, 이천 설봉공원.
‘흙으로 빚는 미래’를 주제로 세계도자기엑스포의 개막식이 열렸다. 다음 날 일반 공개를 앞둔 행사장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국내외 도예 관계자와 외교사절 등이 모였다. 개막식 이후 김대중은 이천 세계도자센터의 세계도자문명전을 관람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육성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경제발전과 국가의 위상이 결정되는 시대에 살고있다.”
김대중은 이천의 도자기 행사에서 국가의 경제발전과 위상을 말했다. 그 배경에는 문화를 국가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바라본 김대중 정부의 정책이 있었다. 1998년 발표한 ‘국민의 정부 새 문화정책’은 문화를 사회의 여러 분야와 연결되는 국가발전의 핵심요소로 제시했다. 문화산업 육성과 함께 지역의 문화공간을 확충하는 방향도 담았다. 문화는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이자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만드는 분야였다.
이천의 도자기는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문화였다. 그릇 하나에는 흙을 고르는 경험과 물레를 돌리는 기술,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입히며 불을 다루는 지식이 쌓여 있다. 도자기의 경쟁력은 그 기술을 익히고 작품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시간에서 나온다.
이천이 도자기의 도시가 된 과정에도 그런 사람들의 이동과 축적이 있었다.
1956년 서울 대방동에 문을 연 한국미술품연구소는 전통 도자공예를 현실생활에 맞게 되살리려 했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958년 문을 닫았다. 일자리를 잃은 유근형과 지순탁 등 숙련 도공들이 찾아온 곳이 이천 신둔면 수광리의 칠기가마였다.
당시 수광리에는 생활용기를 생산하는 가마가 실제로 가동되고 있었고, 숙련된 일손이 필요했다. 칠기는 옹기와 비슷한 생활용기였지만 물레성형과 굽깎기, 두벌구이 등 제작 방식이 자기와 가까웠다. 서울에서 내려온 도공들이 자신의 기술을 활용하고 전통도자기를 연구할 수 있는 생산 기반이 있었던 것이다. 지역의 기존 기술에 새로운 장인들의 경험이 더해지며 이천 도예촌이 형성됐다.
이천의 도자문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가마가 있었고, 일을 찾는 도공들이 왔으며, 그들이 기술을 익히고 전하며 새로운 요장을 세웠다. 도자기의 도시라는 이름 뒤에는 생업을 이어가면서 전통을 되살린 사람들의 역사가 있었다.
김대중이 2001년 이천에서 만난 것은 그 시간이 축적된 문화였다.
세계도자기엑스포는 그 지역문화가 세계와 만나는 무대였다. 김대중은 개막식 치사에서 행사를 한국 도자문화의 활성화와 대중화, 우수한 도자기를 세계에 알릴 기회로 평가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명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정부가 계속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부의 관광진흥 계획 역시 2001년 한국방문의 해와 연계해 세계도자기 행사를 지원하고, 이천의 도자문화를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는 방향을 담고 있었다. 지역의 생산과 창작 기반에 국가의 지원과 국제 홍보가 연결된 것이다.
개막식에는 그 연결을 눈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다.
‘영원한 도자의 불’이었다.
이천의 도공이 봉송한 불은 김대중 대통령 내외의 손을 거쳐 이천시장과 어린이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은 세계도자센터 앞의 불씨대에 불꽃을 안치했다. 지역에서 이어온 도자의 불을 대통령과 다음 세대가 함께 받아 든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전통문화의 미래가 무엇에 달려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기술을 이어온 장인과 그것을 배울 다음 세대, 지역의 노력과 국가의 지원이 함께 있어야 문화는 지속될 수 있다.
당시의 이천세계도자센터는 2021년 ‘경기도자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늘도 작품을 전시하고 도자문화를 교육하며, 국제교류와 작가들의 창작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엑스포가 열렸던 장소에는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공간이 남았다.
문화강국의 토대는 지역에 축적된 문화에서 나온다.
세계에 소개할 문화는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온 기술과 경험에서 자란다. 그 문화를 키우는 정책은 작품을 알리는 일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계속 창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산업의 성과가 지역에 남으려면 축적된 장인들의 기술이 현대로 이어져 새로운 창작이 더해질 때, 세계와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다.
2001년 김대중은 이천에서 문화상품의 경쟁력을 말했다. 경기도자미술관에서 만나는 김대중의 비전은, 지역의 문화를 키우는 일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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