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TRACE | 함평·영광, 지역감정의 벽을 넘으려 한 선거
1990년 11월 9일, 전남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한 사람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만은 아니었다. 그 선거에는 당시 한국 정치의 깊은 상처였던 지역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었다.
평화민주당은 호남 선거구에 영남 출신 이수인 영남대학교 교수를 후보로 공천했다. 김대중은 이 선택에 분명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을 지지해온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먼저 낯선 선택을 요청한 것이다. 후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만 보지 말고, 어떤 정치를 해왔으며 누구를 대표할 수 있는지를 보자는 제안이었다.
오늘 함평에서 이 선거의 기록을 다시 읽는 일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신뢰를 얻은 정치가 그 신뢰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일이기도 하다.

1990년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지역정치의 경계를 시험했다
당시 함평과 영광은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이루고 있었다. 1990년 11월 9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는 이수인이었다. 그는 영남대학교 교수였고, 영남 출신 인사였다.
호남에서 강한 지지를 받던 평화민주당이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운 일은 단순한 공천 전략으로만 보기 어렵다. 당시 정치는 지역 구도에 깊이 묶여 있었다.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가 후보의 정책이나 역량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크게 받아들여졌다.
김대중은 이 굳은 구도를 깨려 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상대 지역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지역에 대한 요청이었다. 호남 유권자들이 영남 출신 후보를 대표로 받아들이는 일이 지역감정 해소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정치에서 화합을 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실제 공천과 투표의 자리에서 화합을 요구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지지자들에게 익숙한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더 넓은 기준으로 판단해달라고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함평영광 실험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지역의 지지를 안전한 기반으로만 쓰지 않고, 그 기반을 국민화합의 가능성으로 넓히려 한 시도였다.
김대중은 영광에서 지역감정 타파를 호소했다
투표를 여드레 앞둔 1990년 11월 1일, 영광에서는 평화민주당 영광·함평 지구당 개편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은 지역감정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하자.”
이 발언은 당시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지역감정은 선거 때마다 표를 가르는 강한 힘으로 작용했다. 정당과 후보는 그 흐름을 이용하기도 했고, 유권자 역시 출신 지역과 정치적 정체성을 연결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은 그 흐름을 거슬러 보려 했다. 그는 영남 출신 후보를 호남 지역의 후보로 내세우는 일을 통해 지역 간 불신을 줄일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도 이 공천을 지역감정 타파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설명했다.
물론 선거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유권자는 정당에 대한 신뢰, 후보의 인물됨, 지역 현안, 정치 지도자의 영향력, 시대 분위기를 함께 본다. 함평·영광 보궐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이 선거의 핵심 질문은 분명했다.
호남 유권자는 영남 출신 후보를 지역 대표로 선택할 수 있는가
지역 출신보다 정치적 책임과 대표성을 더 앞에 놓을 수 있는가
지역의 지지가 국민화합의 메시지로 확장될 수 있는가
김대중은 이 질문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제 선거에서 던졌다.

이수인의 당선은 여러 의미가 겹친 결과였다
선거 결과 이수인은 당선됐다. 영남 출신 인사가 호남의 함평·영광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선택된 것이다.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이수인은 자신의 승리를 지역감정 해소를 바라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함평·영광 주민들의 정치의식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동시에 김대중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 대목은 선거를 균형 있게 읽게 한다. 이수인의 당선을 오직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당시 유권자의 선택에는 몇 가지 요인이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첫째, 김대중과 평화민주당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호남에서 평화민주당은 강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후보를 판단했을 수 있다.
둘째, 이수인 개인에 대한 평가도 작용했을 것이다. 후보가 교수로서 쌓아온 경력, 정치적 태도,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판단의 대상이 됐다.
셋째, 지역감정 해소라는 호소가 선거의 의미를 키웠다. 유권자에게 이 선거는 지역의 의원을 뽑는 일인 동시에, 지역정치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선택이 됐다.
그래서 이 선거를 단순히 “김대중의 영향력으로 이긴 선거”라고만 말하면 부족하다. 반대로 “지역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선거”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다. 더 정확하게는, 지역정치의 현실 속에서 국민화합을 향한 실천이 공천과 투표를 통해 시도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지지를 국민화합으로 넓히려는 정치였다
이 선거에서 눈여겨볼 점은 김대중이 변화를 요청한 대상이다. 그는 상대 지역 유권자에게만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먼저 자신과 평화민주당을 지지해온 호남 유권자들에게 낯선 선택을 제안했다.
그 선택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거에서 유권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 익숙한 배경을 가진 사람, 지역 정서를 대변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기 쉽다. 특히 지역감정이 강했던 시기에는 출신 지역이 후보 판단의 강력한 기준이 됐다.
김대중은 그 기준을 흔들어 보자고 했다. 영남 출신 후보라도 호남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면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이는 대표성의 기준을 출신에서 책임으로 옮기려는 시도였다.
정치적 신뢰는 원래 좁은 곳에서 시작된다. 한 지역의 주민이 특정 정치인을 믿고 지지한다. 한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다. 문제는 그 신뢰가 어디로 향하느냐다.
그 신뢰를 지역의 이익만 지키는 울타리로 사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 신뢰를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다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김대중은 함평·영광에서 두 번째 길을 선택하려 했다.
지역의 지지를 국민화합의 가능성으로 넓히는 정치, 이것이 1990년 함평·영광 보궐선거가 남긴 중요한 장면이다.

오늘의 지방정치에도 남는 질문이 있다
1990년의 함평·영광 선거를 다시 읽는 이유는 과거의 한 장면이 오늘의 질문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지역도 하나의 얼굴만 갖고 있지 않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청년이 있다. 귀농한 가족이 있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이 있고, 통학과 교통 문제를 겪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조건을 가진 이웃들이 한 지역에서 함께 산다.
그렇다면 지역을 대표한다는 말의 의미도 넓어져야 한다. 지역 대표는 단지 특정 정서만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주민들의 생업, 교육, 교통, 의료, 돌봄, 주거 문제를 듣고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다. 오래 산 사람과 새로 온 사람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주민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이 질문을 앞당겨 보여준 사례로 읽을 수 있다. 대표성은 출신 지역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대표성은 책임을 통해 증명된다. 누구의 어려움을 듣는가, 누구의 삶을 정치의 중심에 놓는가, 갈라진 마음을 어떻게 이어가는가가 중요하다.
김대중의 시도는 완성된 해답이었다기보다 하나의 실천이었다. 지역감정이라는 큰 벽을 한 번의 선거로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가 그 벽을 인정하고도 넘어서려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함평에서 다시 읽는 DJ TRACE의 의미
DJ TRACE가 이 선거를 따라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김대중의 정치가 남긴 흔적은 연설문이나 선거 결과표에만 있지 않다. 그 흔적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요청했는지, 그 선택이 지역과 민주주의에 어떤 질문을 남겼는지에 있다.
함평·영광 보궐선거는 김대중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요청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과 함께 민주주의의 길을 찾자고 말했다. 정치적 신뢰를 지역 안에 가두지 않고, 더 넓은 공동체의 신뢰로 이어보려 했다.
물론 이 선거를 오늘의 눈으로만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1990년의 정치 환경, 평화민주당의 지역 기반, 김대중의 영향력, 후보 개인의 조건, 유권자의 복합적 판단을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 이 선거가 가진 실제 의미가 선명해진다.
그럼에도 이 기록 앞에서 남는 문장은 분명하다. 지역의 신뢰를 얻은 정치가 그 신뢰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대중은 함평·영광에서 그 신뢰를 국민화합의 가능성으로 이어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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