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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시장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2시간 전
  • 11분 분량

2026년 8월 24일 김상욱 말하고 박성미 쓰다

편집자 주 이 글은 2026년 8월 24일 「지방정치를 가다」 울산 타운홀에서 김상욱 울산광역시장이 한 발언을 중심으로 정리한 편집 인터뷰다. 당시 발언의 기록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내용과 논리 전개, 주요 사례와 표현을 최대한 보존했다. 반복되는 구어와 명백한 자동녹취 오류는 읽기 쉽게 정리했다.

광역시장은 지방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조금 다른 입구에서 지방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구의원이나 시의원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지방정치를 해온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으로 중앙정치를 먼저 경험하고 다시 지방정치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실제 울산광역시장이 되어보니 광역시장이라는 자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방정치와도 조금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광역시장에게는 중앙정부와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의원이면 자기 구를 깊이 봐야 하고, 시의원이면 울산의 지역 현안을 잘 봐야 합니다. 구청장은 시정부와 잘 연결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역시장은 다릅니다.

중앙정부가 어떤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중앙에서 어떤 사업을 기획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울산의 방향을 맞추면서 전체 지방행정의 방향을 정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구의원과 구청장의 역할이 다르고, 시의원과 시장의 역할도 달라야 합니다.

다 똑같이 하면 오히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시장이 된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일을 하면서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큰 사업은 시장이 오늘 하고 싶다고 해서 내년에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정부와 먼저 사업을 기획하고, 정책적 방향을 맞추고, 구체화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국가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사업도 있고, 예산을 반영하기 위해 또 설득해야 합니다.

큰 사업은 2년, 3년 전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울산에 필요한 큰 사업들도 사실 최소 2~3년 전 중앙정부와 함께 기획됐어야 할 사업들입니다.

그 준비가 비어 있으면 새 시장이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움직여도 2~3년 뒤에야 신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역단체장은 지방정치를 하지만 동시에 중앙정부와 끊임없이 연결돼 있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방분권은 무조건 선(善)한가

지금 많은 권한이 지방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취지는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복지 같은 분야에서 많은 권한이 지방으로 넘어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지방의 권한이 커지면 지방의 토호나 기존 이해관계와 권력이 결합해 부패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예를 들어 지역 기업을 지원하자는 말은 얼핏 보면 당연히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 기업을 우대하자’면서 수의계약을 늘린다고 해봅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경쟁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기존 지역 기업을 계속 우대하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외지에서 실력 있는 기업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지역 안에서 새로 창업한 청년기업도 기존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청년기업은 사라지고, 경쟁력이 떨어져도 기존 카르텔 안에 있는 기업들만 살아남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방정치를 너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정치를 하는 이유, 지방분권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잘못 운영하면 반대 결과가 나옵니다.시민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지역의 부패한 카르텔만 더 공고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회, 기초의회가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여보다 '공개' 가 먼저입니다

시민참여를 이야기할 때 저는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첫 번째가 공개입니다. 참여에 앞서서 물어야 합니다. 얼마나 공개돼 있는가. 공개돼 있으면 관심 있는 시민은 들어와서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 자체가 공개돼 있지 않으면 아무리 시민참여 제도가 있다고 해도 결국 제한적인 참여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숙의의 틀입니다. 제가 공론화 관련 조례를 만들려고 했던 것도 이 숙의의 틀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정책을 단순한 여론조사나 인기투표 방식으로 결정하면 왜곡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중요한 정책이라면 심도 있는 간담회를 통해 쟁점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각 쟁점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정리해야 합니다. 전문가 의견과 시민 의견을 듣고, 복잡한 내용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서 전달해야 합니다.제가 생각하는 공론화위원회는 대신 결정하는 기구가 아닙니다. 공론화 과정을 진행하는 기구입니다. 공개 간담회와 토론회를 세 번, 네 번 하고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면 복잡한 문제도 핵심 쟁점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시민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여론조사든 다른 방식이든 시민의 의견을 최종 결정에 반영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먼저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입니다.



시민의 의견이 모이면 시장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회의도 가능하면 공개하려고 합니다. 실시간으로 몇 백 명밖에 안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몇 백 명의 일반 시민이 원하면 시장과 공무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공론화의 틀도 다시 만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시민의 의견이 취합되면 그것은 말 그대로 시민의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장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중요한 겁니다. 시장이 판단해서 시민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알고 논의하고 의견을 내고 그 의견 때문에 시장의 권력에도 제한이 생기는 것. 저는 그게 시민주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관리하지 않으면 시민에게 피해가 돌아가

제가 지방정치에서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지방의 기득권 카르텔입니다. 지역마다 형태는 다를 겁니다. 하지만 지방의 권력을 키우는 것만 강조하고 그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관리하지 않으면 지방자치가 활성화될수록 오히려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카르텔이 강한 도시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배타적이고 고립되는 경향이 생깁니다. 외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기존의 구조를 건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제가 울산시장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도 울산에 이런 문제가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울산은 산업화 과정에서 아주 빠르게 성장한 도시입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의 정치와 경제, 여러 영향력 있는 집단이 오랫동안 얽혀 하나의 강한 구조를 만들어온 측면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한번 그런 구조가 만들어지고 나면 굉장히 강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가 어렵고 새로운 기업이 들어오기도 어려워집니다. 도시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면 기존의 구조는 더 강해집니다.

이것은 울산만의 문제라기보다 대한민국 지방도시 곳곳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방권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 기득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해 주십시요

제가 유튜브나 여러 강연을 계속 하는 이유는 제가 왜 이러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설명 끝에 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저 혼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혼자 하다가 그만두면 끝나버립니다. 지역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독재와 싸웠던 것도 저는 아주 복잡한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쉽게 말하면 과거의 탐관오리와 싸우는 것과 같은 겁니다.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 소수의 기득권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나누던 구조를 무너뜨리는 싸움이었습니다. 생활 속 지역의 부패를 그냥 두면 그것이 결국 국가의 부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부터 바로잡지 못하면 중앙도 결국 다시 오염됩니다.

민원과 청탁사이

시장을 하다 보면 가까운 사람도 찾아옵니다. 오랫동안 저를 도와준 사람도 있고, 친한 단체나 협회 관계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관계 때문에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다시 같은 일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저와 굉장히 가까웠던 한 협회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협회의 제도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줄 알았더니 개별 사업의 인허가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다가 중단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제도 때문에 여러 사업자가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협회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제안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업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개된 자리에서 듣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민원입니다.

하지만 개별 사업자가 자기 계약이나 인허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시장에게 비공개로 이야기하면 저는 그것을 민원이 아니라 청탁으로 봅니다.

정치인은 여기서 굉장히 흔들리기 쉽습니다.

‘내 편인데.’

‘나를 도와준 사람인데.’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받아주기 시작하면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취임하면서 비서실장도 제 측근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저와 특별한 인연이 없던 시청 공무원에게 맡겼습니다.

제가 숨기거나 뒤에서 지저분하게 할 일이 없다면 가장 가까운 곳을 보는 비서실장도 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공개행정이 중요합니다. 사업자를 만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만나면 됩니다. 기록에 남기면 됩니다.


울산에서 혼자 깃발을 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울산에서 혼자 깃발을 들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깃발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시의회 정치 지형도 저와 다르고, 기초단체장들의 정치적 구성도 다릅니다. 오랫동안 형성된 지역의 기득권 구조를 바꾸겠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도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속한 민주당 안에도 저는 카르텔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정말 혼자 깃발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김대중정치학교에서 이렇게 찾아와주고 응원해주는 것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제가 가진 자부심 가운데 하나가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해 헌정수호상을 받은 것입니다.

김대중, 그리고 ‘시민이 주인인 세상’

12·3을 겪으면서 저는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결국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결국 하나였구나. 저는 그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민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 대동세상- 시민이 주인인 세상-

김대중 대통령을 놓고 우파냐 좌파냐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파와 좌파 그 자체에 관심을 둔 분이 아니라 다 함께 사는 시민이 주인인 세상, 민주주의에 관심을 두신 분입니다. 시민에게 이익이 되면 우리가 잘하는 겁니다. 시민이라는 주인을 잘 섬기면 잘하는 겁니다. ‘도구로서의 정치’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주인이니까 정치인은 도구입니다.


정치인이 주인이 되면 시민이 도구가 된다

정치인이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시민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보게 됩니다. 선동의 대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시민이 주인이고 내가 도구라고 생각하면 정치인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자꾸 시민에게 보고하고 싶어집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점점 내려놓게 됩니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계파정치도 굉장히 경계합니다. 정치인이 자기 자신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순간, 반민주적인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주의가 중앙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역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오염이 뿌리가 되고 결국 중앙정치도 다시 오염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굉장히 취약한 정치체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민주정치는 그냥 한번 만들어놓으면 영원히 유지되는 제도가 아닙니다. 굉장히 취약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금방 오염됩니다. 제도만 민주주의일 뿐 안에서는 금세 썩을 수 있습니다.

서로 기득권을 지켜주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민주정치를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은 길이 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부지런합니다. 돈도 있고, 조직도 있고, 어느 단계에 가면 언론과 정치와 경제적 힘까지 결합합니다. 그러면 시민이 접하는 정보 자체를 왜곡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때로 소수일 수밖에 없고, 용기가 필요하고, 서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민주의 길을 가면서 대접받을 일은 별로 없다.

쉬운 길을 가려면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잘 지내봅시다.”

“우리 편이니까 도와줍시다.”

그렇게 하면 편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하겠다고 하는 순간 길이 험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진정성으로 뭉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지켜줘야 합니다. 저는 시민주권, 국민주권, 민주주의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그런 면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을 잡았다고 쉬워지는 것도 아닙니다.하던 대로 하면 편한데, 하던 대로 할 수 없으니 계속 험한 길로 가게 됩니다.

좋은 제도만으로 시민주권을 지킬 수 있을까

저도 한편으로는 고민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시민주권이 완벽하게 확립된 상태로 영원히 지켜질 수 있을까.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진 사례는 많습니다.

그래서 제도와 함께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지도자를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과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도자는 대체로 길이 험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타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오랫동안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저는 같은 맥락에서 봅니다. 다시는 그런 지도자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기억이 우리 민주주의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기득권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사람을 기득권이 칭찬해줄 리는 없습니다.그래서 누가 칭찬받느냐만으로 민주정치를 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필요한 것은 ‘겸양’

저는 공론화에서도 정치인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지도자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권자 여러분의 뜻은 어떻습니까?”

주권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묻는 과정입니다. 저는 그것도 정치에 필요한 겸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민주주주의는 금세 무너질 수 있다

저는 원래 정치를 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변호사였습니다. 정치를 할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선거 때 투표를 잘 안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정치에 기대가 없었던 거죠. 울산은 제 고향도 아닙니다. 저는 경북 의성 출신이고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울산에서는 어떻게 보면 완전한 타향 사람입니다. 그런데 울산에 온 지 10년쯤 지나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치에 대해 제대로 자각하고, 정치적 사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12·3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확립됐다. 그러니까 이제 정치는 민주주의 자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면 되는 것이다. 그 믿음이 12·3을 겪으면서 흔들렸습니다. 민주주의는 언제까지나 확립돼 있는 것이 아니구나.

깨어 있지 않으면 금세 무너질 수 있구나. 그것을 느끼면서 제가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 한다

“울산시장에 나간다고 하니 다들 바보짓이라고 했습니다”울산시장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 말렸습니다. “바보짓이다.”“네 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회의원 임기도 남아 있었습니다. 중앙정치에서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전에는 다음 정치적 진로를 생각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조금 더 편한 선택도 가능했습니다.그런데 제가 결국 남들이 가장 많이 말리는 울산시장 도전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여기에 사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울산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혼자 힘으로 모든 문제를 바로잡을 수도 없습니다.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조선시대 탐관오리와 싸운 의적들이 결국 다 잡혀 죽었는데, 그러면 의적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느냐. 결국 탐관오리가 이긴 것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의적들 때문에 몇 명은 살았을 겁니다. 굶어 죽을 사람이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바뀌었을 겁니다. 그것을 본 누군가는 깨달았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이 나왔을 겁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 아닙니까.

한 명이라도 살렸으면 의미가 있는 겁니다. 완전히 바꾸지 못해도 조금은 바꿀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울산을 완벽하게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조금의 변화는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으로 일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는 그 작은 변화를 이미 조금 느끼고 있습니다.


울산 시민들이 불만을 말하다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시민입니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울산에서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불편한 일이 있어도 “원래 그렇지.” 하고 넘어가고, 불만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시에 의견이나 제안을 내지 않고, 시가 무엇을 하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불만을 이야기하십니다.

“나는 이게 불만이다.”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반갑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부담입니다. 제가 시장을 제대로 못한다고 욕하는 시민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니까 요구합니다. 주인이니까 관심을 갖습니다. 주인이니까 불만도 말합니다. 그리고 제안을 합니다. 그것이 시민주권입니다.


시민이 깨어나면 기득권의 힘은 약해진다

제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100%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깨어 있는 힘이 강해지면 반민주적이고 반시민적인 기득권 카르텔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저는 기대합니다.그런데 이 과정에는 완성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한번 깨달았다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계속해서 해나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제 바람은 단순합니다.작게는 울산 시민들이,크게는 대한민국 국민들이,진짜 주인으로 대접받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울산의 재정은 나쁜 편이 아닙니다.문제는 재정 자체가 아니라 시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받는 혜택입니다. 저는 울산의 정주환경을 굉장히 심각하게 봅니다. 대중교통, 노후 상수도, 복지, 의료, 교육처럼 시민들이 매일 살아가면서 필요한 분야들을 보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는데도 시민들에게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겁니다. 거대한 상징물이나 눈에 보이는 사업에는 큰돈을 쓰겠다고 하면서 정작 교육, 의료, 대중교통, 상하수도 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활 인프라는 부족하다면 예산의 우선순위를 다시 봐야 합니다. 예산 역시 시민의 이익이라는 기준에서 봐야 합니다.


울산에는 민주주의를 기억할 공간이 없다

울산에는 민주주의를 기념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 없습니다.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큰돈을 들여 거대한 시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울산을 연결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울산의 민주주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광화문이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 된 것처럼 지역마다 그 지역의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공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울산에도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밖에서 제안이 오고, 시민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김대중재단이나 정치학교 같은 곳이 연구해 제안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시장이 혼자 아이디어를 내서 “만듭시다”라고 하는 것보다 시민사회와 여러 주체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울산을 여러 번 찾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역사와 울산을 연결하면 충분히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특정 정당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의 정통을 이어가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도시의 산업화 역사를 기억하는 상징은 많습니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역사와 시민의 권리를 기억하는 상징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울산의 바다와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해

개인적으로 울산에서 좋아하는 곳을 묻는다면 풍경이 아름다운 곳들을 좋아합니다. 대왕암공원이나 동구 쪽도 좋아합니다. 제가 원래 바닷가를 좋아해서 북구나 동구 바닷가에 자주 나가곤 했습니다. 울산에는 산업도시라는 이미지 외에도 굉장히 아름다운 공간들이 많습니다. 저는 울산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조와 인구구조가 독특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한 도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울산은 화합과 통합이라는 주제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오랫동안 소수가 정치·경제·언론 등 여러 영역에서 영향력을 가져온 구조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한편으로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성과 배타성이 강한 구조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도시산업의 미래와 노동의 미래를 동시에 시험하는 최전선의 도시, 울산

울산의 경제구조는 중앙과도 굉장히 밀접합니다. 대기업 본사는 대부분 서울에 있고, 중앙정부의 산업정책 변화에 따라 울산 경제가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은 앞으로 중앙과 지방의 관계, 지방분권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울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가 있습니다. 노동입니다. 울산은 한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전통 제조업과 대규모 노동자가 함께 성장한 도시입니다. 이제 그 전통 제조업이 산업AX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울산은 그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무대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술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AX로 전환하면서 노동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동시에 고민해야 합니다. AI와 자동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대규모 노동해고가 일어난다면 울산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울산에서 산업AX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노동도 지킬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그 모델은 전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도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울산은 정말 실험적인 도시입니다. 산업의 미래와 노동의 미래를 동시에 시험하는 최전선입니다.


울산시민에게 민주주의의 참맛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울산에서 민주당의 이름으로 시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남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도 몇 퍼센트 차이가 전체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꼭 어느 선거에서 이기고 지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 지역에서 다른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있습니다. 저는 광역 단위에서 정치적 체질의 변화를 실험할 수 있는 곳 가운데 울산도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산에는 노동의 전통이 있고, 전국에서 온 시민들이 함께 살고 있고, 산업전환의 최전선이고, 기존의 강한 구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울산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맛을 보여드리는 것.

그동안 울산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맛을 충분히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민이 주인으로 대접받고, 시장이 시민에게 보고하고,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시민에게 묻고, 시민이 불만을 말해도 그것이 귀찮은 일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그것을 한번 경험하면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 저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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